신혜정 • 19.11.2024
지난 9월 발간된 ‘세계원자력산업현황보고서(WNISR) 2024’ 중 SMR을 서술한 부분에서 내린 결론이다. WNISR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세계원자로현황’, 세계원자력협회(WNA)의 ‘세계원전실적보고서’와 함께 원전 산업 동향을 분석하는 주요 보고서로 꼽힌다. 올해 상반기까지의 동향을 다룬 이번 보고서는 각국 전문가 21명의 다중 지표 분석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국일보는 보고서를 한국에 공개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총괄저자 마이클 슈나이더 국제 원자력산업 컨설턴트를 지난 18일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SMR 내용을 집필한 누탈라파티 라마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공공정책 및 국제문제대학원 석좌교수도 서면으로 인터뷰에 참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각국 정부가 SMR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2022년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전력공사(EDF)의 SMR ‘뉴워드’를 비롯한 혁신형 원자로 개발에 11억 달러(약 1조5,000억 원)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는데, 올해 7월 EDF가 돌연 개발을 중단하고 ’검증된 기존 기술 기반 설계’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대표적이다.
EDF의 결정은 신규 SMR의 건설 비용과 기간에 대해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라마나 교수는 “SMR은 적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도록 설계된 데다 건설 비용이 크기에 비례해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대형 원전에 비해 경제적이지 않다”며 “보조금을 많이 받는 일부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SMR이 많이 건설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미국 내 첫 프로젝트로 주목받았던 뉴스케일파워의 77메가와트(MW)급 SMR 6기 건설 사업은 비용 상승으로 구매자를 확보하지 못해 지난해 11월 종료됐다. 2020년 사업 초기 건설 비용은 약 61억 달러(8조 원)로 예상됐으나, 지난해 93억 달러(약 12조2,800억 원)로 늘었다. 뉴스케일파워 역시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5억6,000만 달러(약 7,800억 원) 상당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SMR을 운영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과 러시아뿐이다. 이들 역시 실제 SMR 가동까지 예상보다 2배 긴 약 10년이 걸렸다. 중국 산둥성에서 2022년부터 가동 중인 HTR-PM은 용량이 200MW로 발표됐다가 가동 이후 150MW로 하향 조정됐다.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SMR 지원은 더 강화할 것으로 전망되나, 화석연료 장려 정책과 상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라마나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SMR 확대를 위해 안전규제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지만, 동시에 화석연료의 가격을 낮추기 위한 정책을 펼치면서 SMR의 높은 건설 비용이 불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국의 SMR 장려책에 비해 안전 규제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슈나이더 컨설턴트는 “원전 산업계에서 EPZ(방사선비상계획구역) 축소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설계 인가를 받은 모델도 없는데 이를 논의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실제 건설 인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보다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32개국에서 408기의 원자로가 운영 중이다. 장기 운영정지 상태인 34기는 통계에서 제외됐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가동 중인 원전이 1기 더 늘었으나, 정점이었던 2002년보다는 30기가 적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간 새로 가동을 시작한 원전은 102기, 중단된 건 104기다. 새로 가동을 시작한 원전 중에선 49기가 중국 발전소이고, 중국 외 지역만 따지면 53기다. 또한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은 59기인데 그중 27기는 중국 내 프로젝트이며, 26개는 러시아가 이집트, 인도 등에서 시공 중인 경우다.
일각에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움츠러들었던 원전 산업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데, 통계에서 나타난 현실은 기대와 거리가 있다. 슈나이더 컨설턴트는 “현 지표상 원자력 산업은 변화하지도, 진전하지도 않고 있다”며 “최근 몇 년간 미국 등 주요국이 원전 증설이나 수명연장 등의 계획을 발표했지만, 아직 구체화한 건설 수주 소식도 없어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설계수명이 끝나 운영을 종료하는 원전이 늘고 있지만, 폐로가 더딘 탓에 지속가능성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 보고서는 올해 상반기 기준 지난 70년간 가동된 원자로 655기 중 213기(106GW)가 종료됐으나, 이 중 폐로를 완전히 마친 건 23기에 그친다고 분석했다. 폐로 기간은 짧게는 6년, 길게는 45년이 걸렸다. 슈나이더 컨설턴트는 “원전 건설에 비해 폐로는 기술적 경험이 부족한 데다, 세계적으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마련되지 않아 비용 문제가 복잡해진 것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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